트라팔가 광장에서 실연을 곱씹다 [치료] 실연을 극복하는 방법

우울할 때면 여행을 떠나라는 말이 있다. 낯선 곳의 공기는 당신에게 싱그러운 자극을 줄 것 이고 낯선 경험은 당신의 허물을 벗겨 성장하게 하리라. 여자들이 우울할 때 여행보다 나은 것은 차라리 쇼핑이다. 차라리 그곳에 우울함을 지워줄 몰입의 지경이 있다. 


나는 우울함이 극에 달한 실연의 상처를 가졌을 때 영국으로 홀로 여행을 떠난 적이 있다. 내가 만나보지 못한 멋진 스펙을 가진 남자가 내가 가장 초라한 모습일 때 다가와서 나를 미워하며 그에게 더욱 집착했던 때가 있었다. 돌이켜보면 나를 사랑하고 내가 당당했다면 그와 나는 더 길게 만나고 더 성숙하게 사랑했을지도 모른다. 아니다. 그래도 종국에는 헤어졌겠지. 


나는 내 모습을 미워하며 그의 관심에 나답지 않은 억지스러운 태도와 가식으로 대했고 그를 떠나게 만들었다. 그런 만남과 헤어짐의 반복을 겪으며 내 우울함을 치유하기 위해 떠난 여행. 하지만 그것은 최악이었다. 10시간이 넘는 긴 비행 중에도 매 순간, 영국에 도착하여 눈뜨고 잠 드는 매 순간, 미술관의 그림을 보는 매 순간, 트라팔라가 광장에서 눈부신 한낮의 햇살아래 젊은이들이 지저귀는 순간에도, 영국 노인이 내게 말을 거는 그 순간에도 나는 그를 생각했다. 떨쳐낼 수 없는 그의 모습, 그의 음성, 그의 눈썹, 그의 눈빛, 그의 어루만짐. 


7박8일여의 여행동안 나는 그의 생각을 서울에 있는 동안 곱절은 더 하며 고통의 시간을 보냈다. 그것은 치유가 아닌 고문이었다. 일할 거리도, 만날 사람도 없었기에 나의 모든 시간을 오직 그에 대한 생각으로만 채운. 


서울에 돌아와서 어땠던가? 몇번 더 그를 만났고 나는 자존심을 버리고 내가 참 너를 많이 좋아했던 것 같다고 솔직하게 말했다. 이토록 누군가를 좋아해보고 힘들었던 적이 없었다고. 그리고 그렇게 누군가를 사랑한 내가 참 예쁘다고. 그 말을 듣는 순간 그의 눈빛은 우쭐함과 사랑받는 기쁨에 빛이 났다. 우리의 마지막은 아주 안좋은 전화통화였다. "네가 내게 그렇게 요구할 자격이 없다고 생각하는데?" 라는 가시 돋힌 말을 그가 수화기 너머로 했고 나는 잠시 침묵하다 이제 그만 연락하자라고 했다.   


10년도 더 지난 이야기다. 책을 읽다가 나는 어느 문구에서 어떤 날의 냄새와 햇살 같은게 떠오를 때가 있다. 오늘 장석주 작가의 에세이를 읽다가 우울할 땐 여행을 떠나라는 문구를 보고 서늘하지만 햇살이 눈부셨던 런던 트라팔가 광장의 분수대와 내게 말을 걸던 영국노인의 얼굴이 생각나 그날의 기억을 끄적여 본다. 


실연의 우울함을 달래고자 여행을 떠날 생각이라면 모진 마음을 먹고 떠나야 한다. 돈을 내고 떠나는 고문 여행이 될 것이니. 담배를 끊고 싶은 사람이 담배 지옥에 빠져 목이 매캐할 때까지 담배를 피우고 그 지옥에서 도망쳐 나와 비로소 금연에 성공하는 것 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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